2011. 9. 4.

탑골공원

아마 종로의 어디 공원쯤이었을것이다.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태양은 마치 아직도 여름인양 감당하기 힘든 직사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어디든 가서 1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때워야 했던 나는 주머니에 돈도 없던 나는 당연히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누런 노인들의 인생들 속에 생기넘치는 나의 모습은 그들에게 부러움, 혹은 과거의 자신의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을 추억할꺼리가 충분히 되었으리라.
난 썬글라스를 끼고 관중들을 보듯 여유롭게 쉴곳을 둘러보며 한동안 걸어다녔지만 그 많은 나이든 영혼들은 인생의 계급장 순서대로 그늘에, 심지어는 시간이 지나면 옮겨질 그늘 마저도 미리 차지하고 있었다.
공원을 돌아 다소 헤메던 나의 걸음은 점차 거만에서 짜증으로 변해갔으며 공원의 노인들의 존재는 나의 더위가 더해 질수록 나를 부러워하는 관객에서 성가신 존재들로 변해갔다.
그렇게 한 십이십 분을 걸었을까 콧잔등의 땀으로 썬글라스가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갈 때 쯤 저기 장기를 두는 할배들 옆의 벤치 가운데 한 할머니가 헐렁한 몸빼 바지를 추켜 올리며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에 자리에 앉으려고 설렁설렁 걸어오는 노인네들이 보였지만 어찌 쌩쌩한 스무살 중반의 나와 비교할 수 있을까?
당연히 나는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명정도가 적당한 벤치에 양쪽에 노인네들 2명씩을 끼고 앉아있으려니 이거 참 어색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핸 드폰에 꽃은 후 시계를 보니 아직까지도 약속시간은 1시간 조금 넘게 남아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노인네의 마른 부채질과 왼쪽 두번째의 자꾸만 발가락 양말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까닥이는 노인네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딱히 시간 때울곳이 없던 나는 노래에 집중하려고 볼륨을 올렸다.
그때였다.
이건 뭐 정말 영화에서 보듯 바로 내 앞에서 장기를 두던 한 노인네가 슬로우모션처럼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 온몸이 마비가 된 듯 팔을 앞으로 덜덜 떨며 내쪽으로 쓰러지는게 아닌가.
급박해진 난 순간 벤치 위로 쭈구 린 자세로 올라섯고 노인은 내 다리 사이의 벤치에 머리를 부딪힌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이 썅.... 그때 그말을 입밖으로 내뱉었는지 그냥 생각만 했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랬었다.
그 노인의 치켜올린 눈빛이 꼭 나를 보는것 같았고 부들부들 떠는 몸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듯 했었다.
혹시 길을 가다 차에 치인 개나 고양이를 본적이 있는가? 한없이 몸부림 치며 삶과 죽음을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 처럼 왔다갔다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정말 너무도 생생히 너무도 천천히 지나가고
다행히 그 뒤 "영감" 하고 외치며 뛰어오는 어떤 할매의 소리에 그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할매는... 그 노인네를 붙잡고 몇번 흔들더니 이내 내 바지를 붙잡고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얼굴은 우는 표정이었는데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던것 같다.) 나에게 애원했다.
"총각 이를 어쩐디요~ 우리 할배 병원까지 좀 업어주소~"
"미안 함니데이... 제발 우리 할배좀 도와주소...."
"어찌된 일임니껴... 총각이 다 보지 않았슴니껴..."
"말좀 해보이소"
"영감"
"영감... 정신좀 차려보소...."
"총각...."
"총각.."
"총각."
"총각!!!!!!!!!"
그때 난 아마 벤치 뒤로 올라서서 할머니의 까끌까끌한 손을 뿌리치고 진달래인지 뭔지 이상하게 심겨진 낮은 나무덤불들을 헤치며 뛰고 있었다.
할머니가 다리를 끝까지 잡았는지 나무에 발이 걸린건지 그 상황을 벗어나는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것 같다.
달렸다... 계속 달려 공원을 벗어나고 떡볶이 파는 아저씨를 지나치고 아가씨와 부딪히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마치 꿈같은 시간들 동안 달리고 내가 도착한곳은 시청 잔디밭길 구석이었던것 같다.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나를 붙잡던 그 까슬까슬한 손 그 까슬까슬한 작은 나무 줄기들...(설마 그 할머니 손은 아니었겠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땐 그냥 그런 생각이었던것 같다.
장기두던 할배가 넘어질 때 떨어지던 모자 사이로 보이던 비듬낀 머리가 좀 더러워 보였으며 내 다리 사이에 놓인채 부들부들 떠는 이름 모를 할배의 모습이 내가 뭔가 잘못한것처럼 느껴져 불쾌했고, 멀리서 뛰어오던 할매가 하필 내 자리에 앉았던 할매라는걸 그 순간 내가 알아 버렸다는것.
그 모든것들이 합쳐져 순식간에 나와 주변의 벽을 허물었으며 마치 갑자기 그런 상황이 나와 관련 된 일처럼 느껴지는 그걸 난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던것 같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인생과 그들의 인생은 별개였는데...
몰아쉬는 숨 사이로 내 다리를 붙잡았던 그 할머니의 손의 느낌은 아직도 내 다리를 잡고있는듯 떨쳐지지 않았고 나무 덤불인지 그 할머니가 끝까지 메달린지 모를 그 느낌 하나 하나가 닿았던 내 다리에 남아있는듯 해서 몇번이고 털며 몸서리 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그걸 벗어난건 몇번을 울렸는지 모를 친구의 고마운 전화밸 소리였다.
"야 뭐야 너 전화를 왜이렇게 안 받아~!!"
"너 어디야"
"야"
"야!! 왜 말을 안해~"
"야~ 야 진영아!! 야~ 여보세요??"
그 때.
파란 하늘, 누르스름하고 찐득한 해가 내 눈앞 을 지나가고 멀리 아빠손을 잡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으며 노란색 중앙선, 점점히 박혀있는 흰색 실선 그리고 새까맣고 거칠은 콘크리트 바닥, 쾈 몸을 짓누르는 무게, 빠앙... 크락션소리와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 고무타는 냄새.... 고막 안쪽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일정한 톤의 신경쓰이는 소리.
'삐이~~~~~~'.
그리고 난.
지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죽음 이후에서 이 글을 쓴다.
처음엔 계속해서 반복되는 고장난 비디오 같은 내 상황이 괴로웠지만(그 장면은 여전히 내가 공원에 가고 차에 치일때 까지를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몇번을 반복되었을 모를 그것이 익숙해지기도 하고 내 생각을 알리기도 해야 해서 굳이 이 글을 쓴다.
난 왜 그 어린 나이에 태어난 이유를 뒤로 한 채 이렇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것일까?
왜 그 죽어가던 할아버지는 그런 허무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으며 할머니 역시 끊임없이 감내하며 살아온 인생의 수고에 대한 보답도 없이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을 또 다시 맞아야만 했을까...
다시금 나를 보던 눈물조차 말라버린 음푹 패어지고 굳게 찡그린 할매의 그 표정이 떠오른다...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노인들에겐 익숙한 일들이었을까?
그들도 언젠간 그렇게 되리라는걸 알고 그냥 그렇게 기다리고 있 던 것일까?
그 후로 만나기로 했던 친구, 부모님, 그 공원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 죽음이 그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을까?
언제까지 계속되는 이 장면들 안에서 내가 무었을 찾아야 벗어날 수 있는것일까...
이 글을 보는 누군가 알고 있다면 답글 달아주길 원해...
내가 이 의미없는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너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와 똑같은 일을 겪게 될꺼라는걸 이미 너의 영혼 깊은곳에서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는걸 나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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